각계 권위자들 잇단 자살…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의 비극
국민일보 | 입력 2010.02.26 19:02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권위자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스스로 이룩한 성과와 지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불안과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채 목숨을 버리는 이들의 행태에 일반인들의 충격은 크다.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1등 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경쟁심리가 낳은 병리현상이라며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했다.
◇각계의 권위자도 목숨 끊어=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20일 오전 9시34분쯤 서울의 한 대학병원 6층 옥상에서 이 대학 교수 A씨(39)가 숨져 있는 것을 병원 직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은 A씨의 13층 연구실 방범창이 뚫려 있었고 책상에 우울증 치료약이 있었던 것을 토대로 A씨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24일에는 서강대 물리학과 이모(58) 교수가 서울 창천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교수는 2003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과 2006년 한국과학상을 받은 초전도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사망 당시 이 교수가 입고 있던 점퍼에서는 "큰 논문을 내야 하는데 힘이 든다. 가족과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25일 새벽에는 경남 김해의 모 치과병원 원장 B씨(36)가 운영난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지난달 26일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이모(51) 부사장이 과중한 업무 부담감을 호소하며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이 부사장은 반도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경쟁사회의 비극=치열한 경쟁을 뚫고 각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은 이들이 자살을 택하는 것은 1등 위주, 실적 위주의 경쟁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사회로 빠르게 변하면서 업적 중심의 평가 경향이 강해졌다"며 "승자만 인정받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우수한 실적을 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권위자나 전문가의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의 문턱을 낮춰 일반인의 자살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크다. 일반인에게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도 죽는데…'라는 자괴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원 임세빈(31)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최고 권위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진철(53)씨 역시 "각 분야의 최고가 된 사람을 보며 도전 정신을 자극받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이들의 자살은 일반인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중이나 집단의 과도한 요구와 기대가 전문가, 권위자와 같은 소수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고 추구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다리고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
각계 권위자들 잇단 자살…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의 비극
국민일보 | 입력 2010.02.26 19:02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권위자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스스로 이룩한 성과와 지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불안과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채 목숨을 버리는 이들의 행태에 일반인들의 충격은 크다.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1등 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경쟁심리가 낳은 병리현상이라며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했다.
◇각계의 권위자도 목숨 끊어=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20일 오전 9시34분쯤 서울의 한 대학병원 6층 옥상에서 이 대학 교수 A씨(39)가 숨져 있는 것을 병원 직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은 A씨의 13층 연구실 방범창이 뚫려 있었고 책상에 우울증 치료약이 있었던 것을 토대로 A씨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24일에는 서강대 물리학과 이모(58) 교수가 서울 창천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교수는 2003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과 2006년 한국과학상을 받은 초전도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사망 당시 이 교수가 입고 있던 점퍼에서는 "큰 논문을 내야 하는데 힘이 든다. 가족과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25일 새벽에는 경남 김해의 모 치과병원 원장 B씨(36)가 운영난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지난달 26일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이모(51) 부사장이 과중한 업무 부담감을 호소하며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이 부사장은 반도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경쟁사회의 비극=치열한 경쟁을 뚫고 각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은 이들이 자살을 택하는 것은 1등 위주, 실적 위주의 경쟁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사회로 빠르게 변하면서 업적 중심의 평가 경향이 강해졌다"며 "승자만 인정받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우수한 실적을 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권위자나 전문가의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의 문턱을 낮춰 일반인의 자살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크다. 일반인에게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도 죽는데…'라는 자괴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원 임세빈(31)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최고 권위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진철(53)씨 역시 "각 분야의 최고가 된 사람을 보며 도전 정신을 자극받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이들의 자살은 일반인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중이나 집단의 과도한 요구와 기대가 전문가, 권위자와 같은 소수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고 추구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다리고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